우태닝 2015. 3. 15. 22:40

중학교 때

이맘때 무얼 생각하고 지냈을까?

 

하교가 되면 등교했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특별하는걸 느끼게 된다.

 

정문을 나와 문구점이 있고 아이들이 몰려서 교문 위로 가는 애들도 있었고 그 당시에 흔치않지만 차타고 가는 애도 있었다. 더 내려가면 만리동쪽 위로 올라가고 서부역쪽 아래로 가는 쪽도 있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 상업은행을 더 가서 다시 충정로역쪽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대부분 같은 반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랑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 서부역까지 가기도 하고 근처 아이들 집근처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의외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많이 아쉬었다.

 

하교길에 이 친구들만이 있지 않았다. 운동장에 남아 놀고 가는 친구도 있고 후문으로 가는 친구도 알게 되었다. 또 중3 교실 후문으로 가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학교 정문 근처에 사는 아이도 있었고 작은 골목길에 버스타러 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육교를 건너 집으로 바로 걸어 가는 친구도 있었지만 버스타기 위해 가는 친구도 있었다.

 

정문에서 위로 가다가 바로 왼쪽으로 함께 올라가서 환일 쪽으로 올라가서 갈라지는 친구도 있었다.

또 정문 위쪽으로 올라가서 계속 올라가면 중3 교실 언덕 벽을 끼고 올라가면 학교 후문이 나오고 봉래초 후문이 나온다. 불행이도 이 후문을 몇 번 이용도 못하고 패쇄된 것이 아쉬웠다. 하교길이 다양한 것을 미리 알았으면 이 후문을 더 이용했을텐데 말이다.

 

더 언덕을 끼고 오르면 정말 많이 나누어 갔다. 왼쪽은 환일로 가고 직진은 굴레방 고가도로로 간다. 가다가 나는 오른쪽으로 해서 종근당쪽으로 가야 한다.

 

친구랑 가다보면 정말 새로운 길도 알게 된다. 그 사이에 오른쪽 샛기로 가면 종근당이 빨리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나쁜 형들이나 이상한 애들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빨라서 그리고 호기심에 갔어도 나쁜 일은 일어난 적이 없어서 나중에는 주로 여기로 하교길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주로 학교 근처 중림동에 많이 살았고 나처럼 서대문에 사는 아이, 마포에 사는 아이, 중구와 용산구 외에 가양동과 수색에서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등굣길은 무조건 빨리 가는 길이면 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바꾸면서 다녔다. 그리고 하교길은 그날 날씨와 친구와 수업 직후에 학교와 집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때로는 마포도서관 쪽으로 가고, 때로는 용산 도서관과 남산 도서관 쪽으로 가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4.19 도서관으로 모험심을 발휘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정독 도서관까지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모두 그 당시 걸어 다녔었다. 요즘은 마을 버스와 시내버스, 지하철을 타면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시험때 남산 도서관을 갈 때면 오갈 때 버스를 탔던 기억도 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 걸어서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이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수학과 영어 과학 국어 역사 등이 아니었다. 학생인 친구였고, 그 친구가 말해주는 선생님들 얘기였다. 물론 좋은 얘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 선생님로 인해 내가 스스로 공부했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공부한 길은 가장 남다른 길이기도 하지만, 수천년이 지난 일류 지혜로 이끄리게 한 길이었다.

 

처음에 낯선 길들에서 즐겁고 새로운 호기심이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게 한 길은 이렇게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언제나 왔다가 가는 길에서가 아니라, 늘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다양한 선택이 어느 누구에게나 와닿는 길을 가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