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정치
책과 씨름하면서
언제나 내 무능력해서도 그렇지만
아는 만큼 현실은 너무 멀어지는게 겁이 난다.
책 내용은 바로 삶이 되어 책 속에서 뛰쳐 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공부가 싫고 책을 멀리하다가도, 책 내용에 빠지면 더 현실이 흥미진진해 진다.
그러나 현실은 교실 밖에서 선생님이 지키고있고, 더 나가면 학생부에 기록되고, 더 가면 학교에서 떠나야 한다. 이는 곧 삶의 현실과 멀어지는 추락의 길을 암시한다.
더 나아갈 수 없는 선이 주변에 이미 덧쳐져 있어서 그 안에서만 귀염을 받는 애완동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보이든 그렇지 않든 자유는 있었다. 친구들끼리 공부한 내용으로 농담 따먹기는 유쾌하고 신나는 일이다. 때로 공부보다 더 깊이 들어가고 새로운 책 읽기는 새로운 삶도 경험하게 한다. 언제나 깨어나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지경인만큼 책은 재미가 있었다.
더 외면하고 싶은 것은 신문에서 저녁 뉴스로 이미 전해졌다고 친구들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불온서적으로 빨갱이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인혁당 사건이다. 학생들이 독서 동아리를 한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학교나 교실은 이제 친구들과 공부 얘기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20년이 훨씬 넘었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혁당 사건은 그냥 독서 모임으로 모두 무혐의로 복권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학창시절과 청년시절과 청춘을 잃었고 이제 그들은 장년층으로 머리가 흰머리로 변해가는 모습들이 되어 사진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저들의 삶은 국가로 인해 인생이 단절되듯 이 사회와 긴 격리된 삶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너무나 오랫동안 저들을 멀리해야 해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다른 친구들과 책과 나누는 깊은 얘기는 격리되어야만 했었다. 우리 서로는 깊은 단절을 더 오래 지속되어 서로 타인으로 멀리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 자체도 어색하게
핵폭탄과 같은 군사정부의 강력한 폭력은, 그 다음 사람과 더 먼 거리의 사람, 그리고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고열로 인해서 주변에 모든 것을 변형시키지만, 더 무서운 것은 방사능 낙진과 그 바람이 몰고간 후 생태계 파괴와 방사능에 피폭된 유전자 변형과 발암 물질에 의한 수없이 많은 병마들이다. 아는 병보다는 모르는 병들로 보이지 않는 병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 작은 것은 정신 이상과 같은 것과 대인관계 문제와 사소한 것까지 문제가 되는 인간사 문제가 더 추가 된다. 그리고 이 이상 증상은 또 다른 문제로 제2,3.4차의 피해를 낳고 있다. 그 범위와 그 기간이 길수록 피해는 더 커진다.
그게 군사 독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까지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내게 인혁당 사건은 그 당사들의 고통도 표현할 수도 없겠지만, 아무 상관없는 나도 그 피해에 무관할 수 없음이다. 보이지 않지만 그 아픔은 아픈 것이다. 그냥 작은 것도 아픈 것이다. 아프지 않은데 엄살이 심하게 부리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 되고마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오랜 시간 사람들과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하며 산다. 사람들의 크고 작은 변화와 여러 사람들 유형과 이들의 말과 행동의 패턴은 그들의 첫 마디 몇 마디로 거의 그들을 점쟁이처럼 미리 알만큼 책과 나눔은 익숙하다. 책 첫머리에 등장인물을 분석하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 인물의 선택과 변화 과정은 삶을 흥미롭게 살게 하듯이 작가의 결말도 추적해 가는 시간도 지금 삶의 현장처럼 알아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이 갖게 한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은 텔레비젼의 좋은 드라마를 단절시켰고, 영화는 애마부인과 무릅과 무릅사이로 상상은 본능에 맞기면 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사람간의 관계도 동물처럼 으릉렁되는 짐승이 되어야 했고, 감각과 환상은 나의 것이 아닌 먼 나라의 삶의 현장이 되었다. 이제는 함께 있어도 공감하기 어려운 것을 웃음과 내 삶을 멀리하는 호기심으로 정신을 놓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내 작은 소망은 이루어졌다. 정치에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과 그 환상의 나래는 책과 함께 각자 어린 삶의 현장은 풍성히 지낼 수 있었다. 아직 책은 고향과 자연의 산하에서 이어진 전통적인 정서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도 교육정책과 사교육이라는 굴레가 씌워져서 또다른 병리 현상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나는 비겁했다. 저 교실문을 저 교문을 박차고 나가지 못했던 것과 같이 지금도 과거의 인혁당이 과녘에 총탄이 박히듯 언제나 군화발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내 인생의 붉은 딱지를 붙혀도 스스로 떼지 못하는 허우적거림에 잠에서 깨게 하는 것이다.
공포 정치는 폭력 정치보다 그 피해는 더 무섭다. 폭력적으로 건물을 부시고 다시 지으면 아무런 의식없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포 정치는 새롭고 멋진 집도 의미를 잃게하고 의욕도 잃게 만든다. 폭력정치는 개인 문제나 특정인에게만 한정하게 한다. 그러나 공포정치는 특정 사람과 그 사람 주변을 이유도 근거도 없이 멀리하게 한다. 그리고 특정한 딱지를 붙혀놓으면 그게 사실인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도 황폐화가 진행되게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더 깊은 것이 마치 당연하고 기쁜 것인데 혹시 부정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하고 오히려 무식과 무능이 좋은 것양 알게한다.
그리고 나라 안에는 금기 사항이 늘어나게하고, 그게 왜 금기인지 뚜렷한 근거없이 성공하는가의 기준이 되어간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금기에 대한 정보는 프라이드가 되고, 특정 계급의 특권이 되는 것이다.
이 피해는 결국 각자 개인이 자기 자신이 받게 된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도 그 색안경으로 보고 판단하게하고, 출세로 모든 것을 갖게 되지만 정작 무엇을 할 때마다 무능과 졸작으로 실패를 하게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본질적 접근보다는 모방과 제2 와 제3 의 방식으로 비효율적 생존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혁당과 같은 공포 정치는, 그냥 책 모임에서도, 우리 주변 깔린 금기로 인해 저마다 간을 저리게 한다. 마치 곡예를 하듯 읽고 말을 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필터에 걸려 중간의 새로운 필터나 번역기를 설치해야 한다. 오히려 영어가 되는 사람은 한국 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는 현상이 나오기도 하다.
공부가 재미있는 것임에도 공부는 재미가 없는 것은 개인의 역량까지 왜곡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독서 동아리로 새로운 세상의 경험보다는 고정 관념 안에서 만족하고 그 안에서만 머물기만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것에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해서, 개인뿐만 아니린 국가도 불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게해서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포 정치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왜곡해서 인식하게 하고, 특정 이념에 따라 고정된 사고를 강제하고, 말과 글도 특정한 패턴을 고착하게 하고, 삶의 모습에 행동까지도 정해진 유형으로 움직이게 한다.
설마? 하지만 지금 성공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 성인 독서 동아리는 무능해서 안심을 하게 된다. 작은 것에 기쁨을 만낀 하니 귀엽기만 하다. 배우는 즐거움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자리를 뜨면 의미없는 지식일 뿐이다. 인스턴트 소비처럼 바로 배설하거나 홀로 변비로 반복되는 것은 일시적 효과에 만족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지금 현실에 또 다른 인혁당 사건은 없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그러나 터브시 되는 것은 생각과 말과 책을 선별하고 실재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이 선거를 잘못하게 하는 피해를 양산해서 우리 모두가 공포 정치 피해자로 남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피해가 눈 앞에서 뻔히 일어나고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포 정치가 이 나라 전체를 무능하게 만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는 자들만 설치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