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극
인간의 비극
인간은 때로는 자기 비극을 알면서도 그 비극을 피하지 않고 그 비극 속의 주인공 되어 그 고통에 몸서리치도 고통을 통열하게 느끼어야만 할 때가 있다. 이것만이 자기 운명을 바꾸거나 진짜 운명적 고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약한 인간들, 그리고 사악 저주받은 핏줄들
그러나 정작 자기 운명과 싸우는 자들은 저주받은 사악한 핏줄들이다. 이들의 가엾은 절규에 신의 분노마저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나 나약한 인간은 이들에 노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나약한 인간이 신에게 항변할 때는 신은 이 불의하고 악한 자들의 영원한 저주는 유예가 될 수가 없다! 오직 신은 자기가 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사악한 저주받을 핏줄은 그렇게 예고된 종말을 맞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더 위대한 것이 바로 나약한 자들의 항변이다. 그 나약함에도 선을 지키고 신에 대한 갈망만큼 더 위대한 용기는 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버려진 나약한 존재라도 그에게는 백지 수표같은 무한대의 가치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깊고 깊은 절망 속에서 그 한계를 버티고 이겨내는 인생의 투쟁 속에서 획득 되는 것이다.
운명이 바뀌는 것이 없다. 절대로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인간은 언제나 나약하다. 그런 존재라해도, 언제든 자기가 그 운명을 넘고자 한다면 바꿀 수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길고, 긴 숙명에 굴복하는 한심하게 버려진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존재의 고통을 지켜 본다는 것이 매우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마저 움직이게 한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