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는 세상
하나 되는 세상
세상은 하나 되기에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 다르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변화하고 또 변한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마치 변하는 것 없이 전혀 알지 못할 때도 너무 많다.
그러면서도 서로 비슷한 점들 끼리 끼리끼리 모여 산다. 또 그래야 한다고 느끼고, 어느 새 다른 것이 불편해 지고 만다. 본질과 개념이 혼란스럽게 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은 자유롭고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위해 실수도 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도 입히고 입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사회화를 갖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별 의미있는 것이다. 본질이 바져버리면 말이다.
서로 다른 것이 본질이다. 그 다른 것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도 자기 자신은 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 실제 현실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 또한 가상이 만든 오류이며 본질과 멀어진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서로 다름이 본질이다. 서로 다른 것을 느끼며 알아가고 서르 다름으로 서로 다른 만족과 성취를 돕고 돕는 각자의 다름을 추구해 가는 것이 사회화이다. 겉과 다른 다른 본질은 또한 나를 또 다른 나일 수도 알게 하며 그렇게 산다. 이게 당연한 것이지만 앞의 경우는 문제로 변질 되기도 한다. 소규모 집단이든 대규모 집단이든 그렇다. 가족이나 가정 내에서 형제와 부부 간에도 그렇다. 특별히 밀착된 조직에서도 특별한 것이 아니게 등장한다. 서로 다른 개성이 또 다른 개성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본질에 가까울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이게 사횧사를 더욱 가속시키는 이유가 되어 너무 힘들고 낯설고 곧 사라질 마지막 공동체가 되게도 한다. 어떤 민족이든 나라든 한 운명 공동체는 이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공동체가 탄상한가. 그러나 같든 비슷하든 전혀 상반되든 서로 연관성이 있거나 없거나 영향조차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의 지역과 시간이 지나면 더 다른 새로움이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줄 뿐이다. 오히려 그 공백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퇴보를 하게 되며 나약하고 취약해서 어쩔 수 없는 소멸로 비밀로만 느껴지는 것으로만 남기곤 했다. 지금도.
하나 되는 세상은 모르고 다르지만 이 막연함을 극복하려는 만남이 있고 그 느낌을 나누고 그 앎을 서로 체계화를 시키고 다시 해체시켜 다시 새롭게 구성을 하며 서로 다른 존재와 개념과 그 체계들을 악숙해 하며 모름을 나누어 앎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게 삶으로 들어나 함께 같은 문화를 갖고 새 문명에 한계에 대해 서로 고심하여 그 한계를 통해 하나가 되기 위한 마음과 열정이 솟게 하는 것이다.
어짜면 어린 아이들이 서로 무언의 언어도 함께 하며 놀이를 함께 하는 것과 같다. 단지 그들의 언어가 체계화인지 사회화인 어떤 체계인지를 잘 모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지 않는 한 더 깊은 관계는 형성하기도 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 되는 세상은 바라지만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단지 현재와 과거의 산물들이 방해가 되는 것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부족한 앎이 앎도 아니고, 지키거나 고수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또 그른 것도 아니다. 단지 변화가 두려운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자신이 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되어야 다른 존재가 나와 달라도 같다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에 만남이 전제되고 대화의 그 의미의 교환은 이 내용이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