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개 마을
아침 안개 마을
눈물 범벅이로 이별하고
밤새 올라 온 서울 아침
잠자리 옆에 누가 있나 없나를 처음 살핀 아침
다행히 오줌은 싸지 않은 것 같았다
아부지 어머니 일찍 나간다는 말을 잠결에 들었던 것 같다
꿈에서인지 아닌지 생숭생숭하게 기억을 더듬어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뿌연 세상 끝은 발 끝으로만 보였다
늦은 밤에 도착한 대문은 시골 집 같이 늘 열려 있었고
쪽마루 밑은 신신 당부했던 연탄 아궁이 위에 계란 국과 밥그릇이 남긴 커다란 양은 냄비가 김을 내뿜으며 올려져 있었다
대문 밖은 시골길 처럼 고요했고 우유 배달 자전거가 뿌연 안갯길을 신기하듯 달려갔다.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길을 쭉 달려가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때릉때릉 하는 소리로 열어주었다. 이 밑으로 엄마 아부지가 일한다고 했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이슬이 발 끝 신발에 맺혔다. 트럭 한 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나를 보고 달리는지 보이지 않는 길에 또 다른 길이 있는지 없는지, 누군가에게는 보이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지, 작은 어둔 덩어리를, 더 큰 덩어리가 점점 커져 오고 있었다. 뒤로 돌아봐도 뿌연 천막을 걸어놓은 빨레처럼 오갈 수 없는 무엇인가 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이 빨레 선에서 저 빨레 선으로 빨레 밑을 숨어들어갔다. 어찌 알았는지 트럭은 모른 척 술레잡이를 포기하고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밑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저기로 왔는지 여기로 가야 하는지 좀더 엿튼 그림이 검은 아스팔트에 흰 선이 오고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내가 온 길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마음은 콩닥콩닥 거렸다. 누가 거기 없어요. 바삐 걷는 사람 몇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말을 했나 안 했나? 안개가 더 엿튼 길을 바라보니 사람들 간 길에서 따릉따릉 우유 자전거가 새로운 길을 향해 따라갔다. 옆 샛길이 더 있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시 걸어 온 길은 조금 더 정확히 보였으나 먼 천막들은 바람결에 날릴 뿐 그대로이었다. 더 굵은 안개는 바람따라 버드나뭇결 처럼 날렸고 하얀 이불빨레처럼 훌렁훌렁 아스팔트 위에 고처 널고있었다. 길 옆으로 커다란 벽으로 담배 건조장 같이 큰 건물 벽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안개가 걷히니 담배 잎줄기를 밖에 널어놓은듯 처렁치렁한 서울 구석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높이 가로등이 켜진 듯 초저녁 가로등이 들어왔고 더 붉게 밝아진 가로등은 달이 되었고 낮이 되어 붉은 노란 해가 되었다. 흰 빨레는 밤새 널어놓은 것을 들키지 않게 다들 걷어치우고 있었다. 저 멀리 높이 솟은 굴뚝이 보였고 굴뚝벽에는 뭐라고 적혀있었다. 나중에 집을 잃으며 저 굴뚝보고 찾아 올 만큼 높이 쳐올라 있었다. 햇볕이 짙어질수록 마을 풍경도 더 잘 보였다. 어둔 가로등에 보았던 대문에 쭉 들어가면 안개 낀 잠에서 깨어난 발등의 눈이 생각났다. 더 앞으로 가니 익숙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었냐고 했다. 그냥 놀라서 뒤돌아 집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넓은 신작로가 펼쳐져 있었고 굴뚝 공장 앞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사람들이 어느 새 큰 길을 가득 채우고 차들이 차선 따라 어찌 알 길 없는 길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가 내가 살 마을이란 말이지.
지금 양천 향교역 근처에서 SBS 별관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