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이가야만 하는 강박관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강박관념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좋아지고 나아지고 더 발달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개발하고 개발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참고 더 참고, 버티고 더 버티며 살아왔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그러나 아기가 아이가 되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 늙으며 노인이 되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인 진리이다. 세상이 더 나아지고 발달을 해도, 진리는 불변하며 언제나 그대로 있다. 언제나 어디든지 아무 때나 누구든지 그렇다!
더 나아가도 뒤로 가도 가만히 있어도 그게 개발이고 성장이고 발달이고 성숙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바른 변화라면 변화이다. 어떤 변화이든 그 의미를 쉽게 단정할 수 없고 나쁘다, 부정적이나 좀 낮거나 늦다고도 말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한 기준도 바르다고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변화하고 변할 뿐, 그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다. 좀 더 좋은 선택의 아쉬움이 있다고 해도 그게 언제나 다도 아니고 또 그게 다른 이면을 등장 시키고 있기에 인간의 현명함은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다른 길도 방법도 없다.
어쩌면 그냥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어느 무엇도 강요한 적은 전혀 없다. 그 강요한 느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저 편안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다이다. 그런데 다른 무엇이 더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이게 바로 강박관념이다.
아무 실체도 없는 그 강박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뭘 또 기대하게 한다. 철저히 거짓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이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모든 사회적 악이고 이게 개인에게는 장애이며 병이다. 어쩌면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신의 저주일지 모른다. 그 신은 바로 자신이 되고, 그 신의 축복이 정말 없어야 할 것을 있어야 할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인간의 우수한 점이기도 하지만, 만물은 모든 것이 평등함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구태여 없어도 될 것을 만들어 그 안에서 다시 벗어나지 못하는 위대한 자기 노예의 영광에 젖어 사는 존재들의 자기 운명인 것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서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운명을 따를 수밖에 존재감. 이게 영원한 심판이다. 그래서 자기 강박은 자기 자신의 영원한 ID가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