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맛
술 맛
술 맛은 참 독하다. 처음엔 이 쓴 것을 왜 마시나 싶다. 막걸리는 그냥 시큼하기도 하고 노릇한 걸죽함에 탁주향이 텅빈 속을 채워 줄 것 같은 유혹을 갖게 한다. 노릇노릇한 시큼한 맛이 계속 먹다보면 잠을 자는 듯 하지만 깨어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저녁놀에 발길을 이쪽으로 할지 저쪽으로 할지 선택해야 할 기분처럼 즐겁지만 마음대로 되어지지는 않는 맛이다.
과일주는 막걸이보다 더 달콤함에 끌린다. 벌이 꿀이 끌리듯 과일주에 손이 가고 입이 가고 연속 당기게 한다. 아무리 독한 술도 결국 다 이런 맛이 되는 줄 모른다. 술에 취해 익숙해지면 술이 달콤해 진다. 꽃이 벌과 나비를 부르듯 암컷은 어찌 되었든 수컷을 부른다. 수컷은 이 달콤함에 취하면 다른 맛을 찾을 수 없게 한다.
진짜 술 맛은 이런 맛이 아니다. 진짜 술맛은 타는 듯 하다. 술은 시선을 불태우고 발길을 재촉하게 하고 손길을 타들어 가듯 멈출 수 없게 한다. 그뿐인가 타듯한 눈빛에 타들어기는 얼굴 빛으로 술을 타들어 가는 입술에 다으면 입술은 더욱 타는 듯 하다. 타는 듯한 술이 입에 머물 수 없게 혀를 스치며 덴 것 같은 고통은 다른 맛들을 잊게 무엇이든 입에 넣지만 설상 그 맛은 다시 기억할 수가 없다. 다시 기억하려 마셔 보지만 타는듯 건조함은 어느 새 입에 목으로 넘어가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게 한다. 이 갈증을 지우기 위해 또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지만 곧 타는 듯한 갈증은 쉽게 해결 되지 않는다. 떠들고 먹고 다시 마시고 두리번거리고 이것저것들에 신경을 돌리며 알 수 없는 타는 갈증을 잊어 버리려 힘 쓸 뿐이다. 이 타들어 가는 맛은 목을 따끈하게 데피어 주고 위장 밑부터 잘 느낄 수 없던 따듯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엄마의 약속처럼 타는 듯한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것이다. 이 타는 듯 한 맛이 무엇인가 아래로 버리게 하는지 아니면 위로 버리게 한다. 술맛 이외 다른 것과 섞이고 싶지 않는 욕망은 더욱 잊고 있던 신맛과 쓴 맛 이외 다른 소방수 같은 맛들을 씹게 만든다. 또 다른 맛이지만, 이제야 겨우 먹는 맛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 타는 듯한 맛을 본 이후에야 살아있다는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자기인 것 같은 몸을 술에 태워 본다. 하지만 하나 뿐인 인생도 술과 함께 태워 버리고 있다.
어느 새 차 오른 온기는 얼굴을 달구고 목을 타는 듯한 굴뚝이 되어 용이 입에서 불 길을 뿜듯이 거친 숨을 내뱉게 한다. 온 몸이 타는 듯 하다. 무엇인가 보면 한번 붙어 보고 싶고 한번 뛰어 오를 만 하면 불타듯 오르고 싶어진다.
이 타는 듯한 마음을 누가 알아 줄까 하겠지만 알아주는 것은 이미 타버린 자기 삶의 흔적들만 알아 줄 뿐이다.
술이 타고 싶어서 타들어 가겠나? 태워야만 하기에 삶의 흔적이 남기에 타들어 가는 것뿐이다. 타는 듯 한 술잔을 비우면 그 타는 듯 한 맛은 잊을 수 없는 것 같지만 곧 아무 흔적도 남김 없이 사라지고 없다. 진짜 술맛은 이렇게 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