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공동체여!
자기 무덤은 자기가 판다
죽으면 묻어주는 것은 자기가 못한다
죽기는 자기가 살려고 열심히 하나, 결국 자기 운명은 자기 스스로 결점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영향을 주고 받지만, 결국 죽음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죽고나서 그 죽음에 대한 평은 또한 자신의 몫이다. 결국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나 그런 결과도 자신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마지막도 내 스스로 할 수 없지만 이를 영향을 주는 삶이 의미가 있지않겠나? 좋은 의미도 있고, 나쁜 의미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보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사실상 내가 결정하는 것은 없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고 싶지않아도 죽는다. 단지 자살이 있을 뿐이다. 결국 무덤은 자기가 파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죽음을 앞에 두고 고민해 보자!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매도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너무나 크다. 이는 자살도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전재 자체가 어찌 자살이 있겠는가? 모두 서로 영향을 주며 사는 점이 더 큰 것이다. 그런데 직접적인 것이라보다는 아주 멀리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것이라도 부모관계나 서로 범죄관계일것이다.
죽음앞에서 범죄관계가 아닌 부모관계로 서로를 영향을 주는 것만이 서로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 자기 무덤은 부모가 나를 낳은 것처럼 나도 누군가가 묻어주는 관계이어야 하지않나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스스로 결정된 것이라도, 묻어주는 것은 함께 공동으로 영향을 주기에 남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처럼 묻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어떤 죽음이라도 잘 묻어줘야겠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좋든 나쁘든 잘 묻어주는 것이 운명이 되고 서로의 저주가 되지않겠나 싶다. 너무 많은 살인에 의한 후손이라 남의 죽음을 멀거니 하나, 실상은 그 죽음도 나와 영향 속에 있고, 내 죽음도 누군가와 복잡하게 서로 교차와 중복으로도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누구의 죽음이라도 잘 묻어줘야겠다는 의견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