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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과 慾
우태닝
2020. 11. 30. 18:32
욕欲과 욕慾을 구분을 한자로 이리 쉽게 구분되어 머리가 맑아집니다. 분명한 순수한 욕심도 있는데 말입니다^^
님의 후반부 내용은 더 머리를 무겁게 하는군요.
항상 마음과 머리를 서로 나눠서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항상 머리가 앞서는 것 같지만 실상은 머리와 말과 문자는 더디고 더딥니다. 아주 분명하게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에서는 구태여 구분하기 어렵지요. 마음도 순수한 마음과 꺼리끼는 마음도 본시 하나입니다. 나이를 먹고 생각하고 배워서 나눠진 것입니다. 님은 꺼리낌이 있는 마음을 마치 마음과 이성으로 분리로 대신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실상은 그 꺼리낌이 있는 마음도 몸에서 깊은 마음 속에 울려주는 마음 속 진짜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단지 익숙하지 않아 부정적으로 평할 때가 있지요. 만일 이글을 똑같이 썼다면 저는 님의 글처럼 어쩌면 그게 바로 부정적인 마음 慾이지요 할지도 모릅니다만, 님을 잠시 보아왔을 때 꺼리낌이 있는 마음일지라도 순수함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고 제 자신이 이런 경우에 많이 당황해서 긴 시간이 되어 경우 알아채리곤 하지요. 많은데 몇번만요 ㅜㅜ
이게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꺼리낌이 있어 들어나는 마음이 순수 이성이라 말하고 싶어요. 칸트 철학을 읽고 배우면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했었거든요.
이성도 보편타당성이면 欲이 아닐까요? 논리에 모순이나 오류 등이 있으면 부정적인 慾이 아닐까 반축해 봅니다.
현대인의 일상을 통해 당연한 욕망을 인정하고 들어내는 점은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과도하게 억압하고 억제하는 개인이나 집단 사회 분위기에서 일부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이탈행위 또한 지나쳐서 문제가 됩니다.
차라리 무지하면 큰 허물이 없어 보일 때가 있는데, 근본은 마음이 중요하지 머리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또한 억압만 느낍니다. 물론 마음이 순수하다는 전제겠지요.
민주사회에서 백성이 알아야, 정치인에게 당하지 않고 폭정을 막을 수 있지만, 도교나 유교는 백성이 무지해야 더 살기 좋았지 않았나 싶어요. 위정자가 제대로 보편타당성이 있게 정치를 했다면요.
아래 백성이 잘 살고 똑똑할수록, 위정자는 더욱더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소박한 일상을 즐길 수 있어야 했지요.
아랫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일치할 만큼 혼란도 복잡함도 없이 서로 통하기 쉽고 폭정에 당하지 않는 듯입니다.
위정자가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야 할 이유는 무한 책임감을 갖고 충분히 나눠주고 남을 만큼 배풀 수 있는 지성을 갖추어 이상사회를 향해 끝없이 매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