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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추억

우태닝 2021. 1. 26. 22:13

촛불 추억

716 503 정권하에서 절망을 뚫고 나온 새싹과 같은 희망은?
문성근의 백만 국민의 명령이었다.
다음은 오세훈이 무상급식 반대로 뻘짓으로 박원순 시장이 된 것이었다.
그다음은 세월호 참사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재단의 봉화버스, 진보의 버스이었다. 노동운동과 진보인사 중 이간책도 있었으나, 민주인사의 등장과 분열이 문재인과 전국정당 민주당이라는 민주정치 기초가 튼튼해진 것이 기억된다.

언론의 투쟁이 기억되나, 지금 다시 어용언론이 된 것도 기가 차다. 그래도 촛불은 종편이 적폐의 바다역활을 했으나, 종편jtbc가 촛불의 시대를 조명해 주었다. 지금은 개인방송과 mbc와 일부 제대로 된 소수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다. 한쪽에서는 민주방송 다른 한쪽에서는 적폐방송행태는 변화된 점이 없이 아직도 어용언론 행태는 여전하다.

광화문 집회와 시위는 민주당 인사가 초기 보였다가 시민운동으로 자리잡으면서 정치인은 sns로 접하게 되었고, 시민단체 경험자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합류하고 광화문 광장에 모이게 된 것이 가장 큰 계기임은 분명했다. 특히 시민발언과 참여가 서로 큰 힘이 되었다.

집회에는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환수복지당 녹색당 참여를 꼭 기억해야 한다. 진보정치가 지금도 어렵지만, 반듯이 진보 정권은 반듯이 등장한다. 민주정치의 꽃은 진보정권의 등장이다. 모든 민주정치는 진보정권 등장으로 지금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sns가 촛불의 꽃이 되어주었다. 김대중 정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시민 넥타이 부대 합류로 신문방송 기존언론이 국내외 권력을 움직여서 바꾸었던 역사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 혁명으로 가능했다. 촛불혁명인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폰sns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적폐화로 다국 sns로는 어렵게 된 점은 지금도 아쉬운 점이다. 국민의 승리가 외국 기업에 더 이익이 되었고, 거대자본의 한계를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자본에 sns를 조금 열어준 것같지만, 여론조작과 정치이슈 왜곡은 민주역사 중 최악임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래도 망치부인 김어중 등 많은 민주여론이 파급되어, 수없이 조성된 편파방송과 여론조작 중에도 시민여론 참여가 최악미디어 환경에서도 건실한 정치의 버팀목이 된 점은 미국 유럽선진국보다 앞서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 언론과 방송미디어 자본이 시민 수준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민주화 혁명적 도전의 요구는 더욱더 거세질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어진다.

아직도 사법부 개혁과 토지 자본 금융 자원배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현실이다. 아직도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친일과 군사독재 자본독점과 역사바로세우기 핵심역사문제로 넘기는데 지체를 보여주고 있다. 신냉전이다는 중국의 등장과 다시 중국 봉쇄지점에서 역사바로세우기는 현재진행중이면서도 새로운 이슈로 과거문제를 다시 가져와 바로잡기가 어렵다. 과거 제국주의 세력이 지금의 선진국이고 영향력이 크기에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자본력으로 대한민국 적폐청산의 가장 큰 저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적폐의 뒷배가 너무 큰 것임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 물타기와 양쪽의 이중성으로 느린 혁명에 긴 평화만이 가장 의미있는 변화이다. 위기이면서도 기회는 지금도 처음 촛불처럼 여전하다. 3.1만세운동도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도 4.19학생혁명도 민주화운동도 그랬다. 한강의 기적도 그랬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계속 지속적인 기적을 이루어 만들어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