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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자는 교언영색을 싫어했을까?

우태닝 2015. 3. 18. 11:05

공자는 교언영색을 매우 싫어했다.

 

어찌 공자만이 그렇겠나?

 

동서양은 물론 지금이나 예전이나 어디에서 누구에게 그렇지 않는가!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꾸미지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어쩌면 공자도 평생 예를 다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 지금도 서로 예를 다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에서 구태여 교언영색하지 않은 친구가 오랫동안 있는듯 없는 동참모임을 함께 했다.

때로는 몇달을 침묵해도 아무도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십오년 정도를 함께 해왔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도 알지도 못한 친구들이 늘 더니 교언영색이 줄 곧 이어지더니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교언영색 으로 물들게 하였다. 수없이 보고 또 본 모습이지만, 공자가 말하고 지킨 예인지 아닌지 모를 모습만 남기고 초록은 동색으로 한순간에 공자 예는 서로가 알 길없게 만들고 말았다.

 

이게 어디 한순간에 만들어졌겠는가?

 

공자는 동이족이다. 그리고 그 공자에 나라였던 조선도 어느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동네의 개, 잔치집에 개로 교언영색을 숨기고 지내다가 아들을 왕이 되게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은 고종으로 이런저런 명목으로 대한제국이 되었고, 대한제국은 어느 사이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졌다. 고종 주위에서 이런저런 교언영색에 고종은 아니라고 말하지도 제대로 뜻을 전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고종 아들 순종때 공자의 본 자취는 거의 사라지고 교언영색의 나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교언영색을 하든 안하든 진정한 것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예가 있든 없든 언제나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공자가 싫은 것은 바로 진정없어서이다.

 

유교 나라는 그렇게 진정성이 전해지지 못하고 있고, 세계의 유교 국가들은 진정성없이 유교가 나쁘다고 한다. 또한 공자에 대한 평가도 쉽게 내리곤 한다. 바로 진정성없이 말이다.

 

내가 본 공자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런 공자에게 예를 갖출 수 있는 것은 요즘 시대에도 진정성에 매우 아쉬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