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인간은 바벨탑을 쌓기만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끝없이 이런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
그런데 한 인간은 이런 구원에 대해 잘 모른다.
하느님은 요나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였지만, 노아 아들 함은 아버지를 능욕하듯이 함의 후손은 니느웨에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하느님은 노아때 그러듯이 바벨탑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바벨탑이 세웠던 니느웨는 또 하느님을 거역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찌 이런 도시를 또다시 구원하시는 걸까요? 하지만 하느님은 요나에게 노아에게 신탁을 하듯이 니느웨 구원을 약속하신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느님 구원을 얘기해서 회개하게 하라고 하는 신탁을 거절한다. 그리고 요나는 물고기 배 속을 들어가 살아야 하는 끝없어는 환난과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다.
단테는 이런 신의 구원 계획를 신곡에 담아 전하라는 신탁을 거절했다. 그래서 신은 단테의 사랑 베아트리체를 단테에게서 떼어내셨다. 그리고 단테는 신탁에 따르게 된다. 그래서 단테는 자신이 여행한 지옥과 천국과 연옥을 안내자로 베아트리체를 부활 시킬 수 있었다.
지금도 하느님은 신을 능욕하지 말고 신탁을 따르라고 한다. 하지만 노아의 갈등과 요나의 갈등, 그리고 단테의 갈등은 잘 알지 못 한다. 이들이 다른 삶과 구분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과 구분되어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가 않다. 노아처럼 자신의 모든 가족을 희생해야 하고, 요나처럼 자기 생명도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단테처럼 자기 사랑도 잃어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노아에게 새 세상을 주었고 요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했다. 단테는 남다른 사랑을 영원히 허락해 주셨다.
지금 나와 당신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우리는 나와 당신 안에 계신 신을 능욕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이 나와 당신에게 명한 것을 따라야 합니다. 신탁을 거역하는 것만큼에 비극은 없습니다.
바벨탑 사건이후로 인간은 혼자서는 신을 능욕하기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스스로도 당신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와 당신이 함께 하는 것만이 우리 자신의 신탁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 안에 신을 거역할 수 없고, 당신은 내 안의 신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와 당신 사이에 자녀 안에 신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가 신의 명령을 따르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 삶에 비극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