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기에 어색한 사람이 어쩌다 고민하며 살다보니 뜻밖에 것이 더 중요함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젊고 에너지가 넘쳐서 외부의 것에 관심을 갖고 조건없이 내 것으로 만들었지요. 그러나 어느 덧 이것도 진정 내 참 모습을 만들어주지 못하더군요.
늘 언제나 우습게 여기던 어른들과 내 부모의 잘못은 나도 모르게 가볍게 여기며 지금도 살고 있고, 앞 세대에 대한 비난과 비판만큼 손 쉬운 것은 없지요.
그러다 손에 잡히는 고전들은 결국 지금 나의 문제이고 내 앞 세대에서 미쳐 몰랐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지식이지만, 지식은 그냥 혼자서 지금까지 사는 것과 같이 익혀지는 것이 있지만, 나보다 연장자의 모름이든 실수이든 잘못이나 그 과거의 지식들에서 묻어나는 것들은 지금 현 세대의 뛰어남보다 더 값진 것이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음악의 악보도 아니도 리듬이나 음정도 아니고 가사도 아닌 것이 있더군요. 그 노래에서 느껴지는 음악과 함께 같이 묻어나는 그 사람의 숨결에 실려있는 한 사람의 진동은 먼 과거에서 내게로 흘러오는 무엇인가 진짜를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삶과 나보다 더 사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이 무엇인가 진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줄곧 내려오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아이에게 이 진짜를 느끼면 우리 말을 배우게 되고 같은 민족성을 마치 종교 메세지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파고들게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연어의 회귀본성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희생하듯 그 무엇인가 하는 진짜에 뚜렷이 말할 수도 없는 것에 이해할 수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만드는 것같습니다.
왜 명절 때마다 모이고, 때가 되면 생각나게하고 그립게 만드는 그것은 진짜 나이 앞에 장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모르고 어찌 자유를 말하고, 어찌 사랑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행복과 만족도 결국 이 말할 수 없는 지식이 아니면 다른 지식도 무가치함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 세대가 후세들에게 무엇인가 말해주고 가르쳐 주고 싶어도 잘 안되는 것을, 한 때나마 진진하게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묻어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후세들은 바른 삶을 느끼고 그 진짜를 향해 가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름 그런대로 고민하다가 알게 되었지만, 아직은 이런 식으로 외에는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 세대들의 싫고 틀리고 잘못했어도 함께 하는 가운데 무엇인가 진짜를 알게 해 주는 것을 강조하게 하는 것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