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례들
보다 현실적이고 좀 구체적이면 실제 있던 일들
너무 간절한 만큼 알고 싶고 궁금한 얘기들
실재 다들 어떻게 살까?
보다 리얼해진 생동감 있는 영상과 실제 사실들
지금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학문도 지식도 많고 정보도 넘쳐나며 인간 뇌 용량도 더욱 커졌다. 어느 새 현대 문명이 죽을 나이는 많아지게 했지만 죽을 모습은 더 빨라지게 만들었다. 20대부터 죽을 만큼 경직되고 탈모에 백발로 더욱 늘었으며 오히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기회는 더 늘었다. 억지로 자학과 같은 현상들은 도를 넘었다. 일본 노인들은 도둑질을 해서 감옥을 가는 것을 더 선호할 만큼 현실은 더 왜곡되고 더 굴절되어 무엇이 실제일지 모를 지경이 된 것이 아니냐 말하고 싶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찾고 보다 실제 사례들을 말하고 보고 싶고 알고 싶어하지만 다 보고 들어 알아도 빈껍데기일 뿐이다.
왜 그럴까?
먼저 왜 실제 사례가 필요들할까? 시작부터 몽상에 대한 그 바람들인 것이다. 거의 미쳐있는 정신인데 무엇이 실제가 있겠는가? 있어도 이미 몽상이기에 몽상인 상태에서 바라 볼 뿐이고 이 상태에 머물고 싶은 욕망들로 모두다 대부분이 비현실적인 상태로 비현실 속에서 살고 싶은 현실이라는 말이다.
사례와 구체성은 이미 자기 자신이 그려진 것을 보고자하는 욕망이기에 그 틀에 맞아야 구체적이며 실제 사례로 인정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관념이다. 그래서 관념의 존재이지 실재 존재는 결코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삶이고 대상의 실재 경험이라도 그게 다가 아니며 언어와 관념의 정리에 따른 만큼 구체적이고 사실인 것이다. 글과 영상과 보여지는 것, 그 모든 경험 자체가 망상이며 실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진실과 삶 자체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누구나 아는 것이다. 구태여 다른 사실이 필요하지 않으며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다. 단지 서로 구별과 차이로 말과 사실로 함께 할 기회가 필요한 것뿐이다. 아니면 무엇이라고 억지 주장과 말이 필요하겠는가? 서로 망상 속에 있기에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말이라는 허구가 존재라고 하는 허상을 한 인식한 관념이 그 거짓을 알아보면 계속 착각 속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상상과 본질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현실에서 행복하기 위해 착각하고 싶은 것뿐이다. 종교 예술 문학 철학 과학 등 각종 문명은 거짓을 마치 진짜인양 꾸미고 싶을 뿐이다.
보다 나은 삶은 그 본질에 가까운 착각과 그 착각 그대로 살아가면서 그 착각이라는 것을 실현하려는 과정의 한 순간의 찰라에 대해 실존하는 것이지, 그 이외에는 의미도 가치도 없다. 남의 사례도 더 분명할수록 나와는 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현실은 '내 존재가 본질에 얼마나 더 가까운가?'이다. 그 가까운 만큼 착각하며 실존하려는 노력하는 과정의 한순간의 찰라만이 구체적이며 실제 사례일 뿐이다. 이 사례는 전무후무한 유일한 사례가 되기에 남과는 전혀 상관도 없고 듣고 안다고 또 다른 남에게 참고도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필요한 만큼은 확실히 거짓일 뿐이다.
참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넘쳐 나지만, 똑바로 현실을 사는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도 어렵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