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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문제 제기

우태닝 2017. 11. 3. 21:55

뜻밖의 문제 제기

 

나는 학교 수업 시간에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서 책 읽는 일을 시작했었다. 나도 뒤늦게 책을 읽게 되었고 한국 단편들이 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줄 수 있어서 단편 소설 읽으며 학생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학업에 뒤진 학생들이 많았다. 주로 초등학생 때부터 크게 실력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성인이 되면서 학업 실력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다급하게 아는 시절은 초등 고학년부터이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듯한 간격은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단편들로 이를 극복했던 몇 안되는 경험으로 줄 곧 단편소설 수업을 했었다. 다들 잘하다가 늦은 아이들이었고 중학생일 경우는 좀 심각한 학생 학부모에게 연락이 와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특별히 중등 학과과정에 단편 읽기와 독후감 쓰기도 꽤 있어서 나도 덩달아서 단편들을 좀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단편들만 읽는 중학생 프로그램이 생겨서 강사로 이곳저곳 다니며 중학생들을 만나서 책을 읽고 독후감 쓰기로 단순히 진행될 과정을 하게 되었다. 수준이 낮은 학생들도 많았지만 특별히 관심있는 학부모님이 공부 좀 하는 자기 아들을 보냈다. 물론 여학생들도 많았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학생 자신 필요보다 학부모 필요에 의해서가 많았다. 단순하게 말해서 엄마나 아빠가 읽고 싶었던 책들을 자기 자녀들에게 읽게 해 주고 싶은 경우가 다반사이었다. 그중 유별난 어머니는 초등시절 저학년때처럼 자기가 읽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자기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다. 아마도 부모가 공부를 시키거나 책을 읽게 하는 경우가 거의 다가 이럴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직접 그 단편을 읽고 전화를 해 준 것이다. 나는 나름 교사 자격으로 전화를 받았고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 주고 싶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질문은 너무 책이 야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책 내용 일부에 성행위 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학생들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교사입장이 되어있어서 수업 중이나 학생 개별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수업 내용을 말과 지성과 이성적 접근이 문제를 만들지 않음을 강조하는 교사입장에서는 학부모가 문제가 될 것인지는 정말 예측을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그 학부모 학생과 수업 분위기에 대해 우려될 상황을 전달했던 기억이 난다. 참 길었고 진지한 학부모 상담 전화가 된 것이다. 한참 사춘기일 때이고 어머니 자신도 사춘기 딸에 대해 심사숙고 하고 있는 정황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교사인 내 입장에서 교육부 추천 도서이고 그 학생이 다니는 학교 추천도서이었고 그 학년 독서 목록에 있는 내용이다. 이를 어머니에게 전했지만, 아마도 이런 내용도 모르고 추천도서가 된 것이 아니냐고 강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교사입장에 학부모입장이 아닌 같은 독자로 얘기하고 싶어졌다.어머니도 학창시절 이 추천도서를 읽은 적이 없지요? 그렇다고 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연배는 그 답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 안되는 학생도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해 질 것이 없다. 왜냐하면 책 내용에서 문제를 다룰 부분이 너무 많고 성문제보다는 더 큰 주제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특별히 다룰 것은 못되었다.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책 내용 하나하나 작은 부분까지 깊게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진행된 교육프로그럠은 없었다. 이 학부모의 문제 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행위 묘사는 문학적인 부분이라서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그리 문제답게 다룰 여지는 성인인 어른 문제이다. 특히 학부모 성의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특별히 학생에 대해 학부모 자신도 여학생이지만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통화 후에 또 다른 남학생 학부모도 전화를 한 것이다. 이 문제된 부분의 내용을 몰라서 학생이 자기 어머니께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답을 하려니 자기 아들한테 얘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 이해를 가는 부분이고 사춘기 시절에 성에 민감한 시기라 학부모 입장을 이해를 하게 되지만 본질은 없고 사변으로만 흐르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책을 선정한 사람들도 좋은 내용으로만 알고 있지 그 책 내용에 대해 대수로운 것으로 보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내고 싶어었다. 그러나 이런 답답함은 어느 시절이 되기까지는 답답하게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성이라는 것이 터푸시하고 있고 매우 당연한 것마저 특별해진 점도 있겠지만, 어느 작은 것에 대한 것에 의미를 과장되듯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문제들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남기게 한다. 문학은 삶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생물학자는 후손을 남기기 위해 성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모든 기관들이 생식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이유에서이다. 문학에서도 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문학도 삶이고 인간 존재 얘기이기때문이다. 성이 모든 것을 말한다고도 해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않은 나는 결코 성을 빼놓고 말하는 것이 더 불편한 것이 아닌가를 말해 주고 싶지만 끝내 이 얘기는 말하지는 못 한 것 같다. 성에 민감한 시기에 성에 대한 이성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성교육이 되지 않겠나 하는 작은 바람을 전했었다. 수없이 많은 인체 구조들과 수없이 많은 기능 중에 어느 한 곳만 집착되거나 집약되는 것이 더 많은 부분들을 퇴화시킨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들도 무엇으로도 표현 다 못할 가능성을 더 많이 포기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함께 공감할 날들과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함께 다양한 공감과 핵심 문제를 찾아 함께 더 나은 고민을 나눌 그런 여건들이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