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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우태닝 2019. 2. 9. 19:22

존재감

 

존재감을 주는 남녀간의 사랑은 생존이라는 안락함보다 더 깊고 친밀하고, 부모나 형제 동포애보다 강력하다. 존재감을 무시하는 사랑은 의미가 없거나 확 차이가 나서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사랑이 의례있는 것이라 존재감이 중요함에도 쉽게 무시가 될 수 있다. 특히 부모 존재나 희생에 의해서 자녀나 후세의 존재감이 무시되거나 희석되면 과거의 보람이나 공적은 언제든 무너질 위기를 갖고 있다. 사람간 만남과 이별은 서로 서로 존재감 인정과 확인을 하는 과정이다. 부재를 통해 상대방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더 들어내려는 욕구와 욕망에 의해서 진행된다. 삶의 여정 속 결빕은 언제나 남녀간 사랑과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확인해 간다. 남녀간의 사랑은 서로 불완전한 존재로 나와 상대를 인정하고 확인하지만,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나 친척이나 친구 사이는 서로 갖춰진 존재감에서 보다 나은 삶의 여정이라서 생존에 가깝다. 생존만으로 개인간 다양함을 모두 채워 줄 수는 없기에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종족 유지와 번식처럼 개인 자기 자신의 불안전한 존재감에 모든 가치이동으로 가까운 곳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 불안전한 아기는 부모를 그 대상으로 하거나 주변의 우상을 자기 모델로 삼는다. 그모델은 우매한 착시현상이다. 이 우매함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언제나 사랑에 목마르고 존재감에 고독할 수 밖에 없다. 이 우매함이 남녀 사랑으로 가치이동을 하고 또 다시 자기 자녀에게 가치이동을 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처럼 공허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상호 존중이 더이상의 가치이동을 멈추게 한다. 인간의 삶의 여정은 멈추는 것이고 끝없는 여행이 아니다. 끝없이 누구에 누구에 관심은 자신뿐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마저 착각의 대상이 되어 우매해진다.

존재감은 남녀간 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가능하다. 누구든 부족하거나 결핍과 같은 불완전함으로 산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는 서로의 장단점을 공유해서 함께 생존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창조를 한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의미는 서로의 존재감으로 나와 상대를 더욱더 분명한 존재감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렇고 누구든 작은 도움으로 진짜 더 나은 자기 자신이 갈망하는 자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여전히 그 불안전함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욕망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의 결핍을 대신해 주는 작은 가치이동은 그 결핍의 불안전함이 아닌 완전함으로 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이러는 전반의 과정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분명 누구나 가능하다! 누구나 불완전하듯이 말이다. 이는 출산자체 가족을 이루고 또 다른 가족을 이루게 한다. 이 또한 자연스럽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또 다른 가족은 가치이동을 이루어지지만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 어렵게 된다.

누구나 노력을 하지만 자신깨기의 결핍은 계속 불안전한 여정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욕망은 더 이상 욕망하려는 자기 존재감을 깨뜨리는 것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현대인은 도저히 스스로 누구를 위해 자기 자신을 깨뜨리지 못한다. 현대의 우매함이다. 우매함에서 벗어나기는 생존이 아닌 존재감에 대한 깊은 고민이 될 것이다. 어찌 이보다 더 친근하고 친밀한 고민이 또 있겠는가? 그럼 비로서 끝없는 갈등과 가치이동을 멈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존재감 자체가 정지해 있어야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