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문제를 잘 알고, 이로인해서 생기는 문제들에 가족과 가까운 사람끼리 힘이 되어주거나 배려나 격려나 위로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 교육이나 취업은 정치기득권이 파렴치하게 유지하고 갑질을 마음대로 하는 현실은 모두가 가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가해자는 비양심 몰염치로 정치병을 앓기 쉽고, 피해자는 무능에 빠져 나오기 어렵거나 불필요한 피해의식이거나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것에 너무 취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피해자도 가해자처럼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이 시대의 문제이다. 이 고질적 문제가 세계 곳곳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는 세계 무역과 자유경쟁으로 더 좋은 서비스와 더 나은 편리와 더 나은 풍요 때문일 것이다. 근본은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면서 서로 눈치를 볼 뿐, 해결되기 어려운 점은 서로가 공감해야 한다. 조금만 하면 더 많이 얻어질 도박과 같은데, 누가 그 특권을 쉽게 포기할까요?
그래서 현대인의 이익보다 그 폐해로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공동체 멀리는 지구 환경까지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의 역사의 일부가 전체 지구역사보다 짧으면서도 더욱 심각한 점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쉽게 얻어진 편의와 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장벽과 더 높은 계단을 뛰어 올라야 할 무의미를 의미처럼 강요하는 인간의 탐욕이 서로가 서로를 불행하게 한다. 더 많이 알고, 더 좋은 점수, 더 좋은 학점, 더 높은 자격과 더 좋은 직장을 향해 우리 서로는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현실이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은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한 새로운 신분에서 겨우 벗어날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다.
어린이는 더 많은 학업에 시달려야 하고, 학생은 고비용 저효율에 젊음과 학비를 낭비해야 겨우 소수만 피해자를 면하게 된다. 청춘은 취업과 근무를 위해 남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희생해야 누군가의 희생의 덕을 볼 수 있다. 이도 진입장벽과 기득권 유지에 더많은 소비와 위로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는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버텨야 하는 점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듯 지금도 현대인은 계속 줄기차게 출애굽을 해야 한다. 이 불필요한 비용에서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지금의 청춘이 취업마저 힘들수록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함에도 이런 기회가 부족한 청춘은 금방 늙고 타자의 욕망에 희생을 강요하는 압박하는 현실에 모른 척하기도 힘들다. 조금만 더 보살펴주고 더 기회를 주면 좋겠지만, 실상은 본질은 오간데 없고 불필요한 소요만이 이 가장 평화로운 시절은 전쟁터와 같은 행복 지수를 지켜내고 있다.
이게 진정 예수님이 원하는 세상일까? 가장 기독교가 번창한 이 시대에 예수보다는 인간의 탐욕이 인간관계마저 위태로우니 참 모른 척하기도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