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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절대 안먹는다 선언한 날

우태닝 2021. 7. 17. 22:45

고기 절대 안먹는다 선언한 날

초딩 시절, 요즘 복날쯤 되는 서울 강서구 양천에 살 때이다.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산 아래 작은 마을들이 있었고 크고 작은 공장들로 도랑이 껌게 되었던 오래된 농촌이었지만, 공항가는 길목이라 큰 차들이 길주변 나무와 풀들과 개천을 먼지로 덮어버리며 많이 다녔었다. 형들은 도시락을 싸고 다녔고 나는 점심때 하교해서 친구네는 목걸이 열쇠로 집에 들어갔지만 나는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 큰 유리문 사이로 가방을 던져서 마루위로 홈태그로 하루가 시작했다. 그당시 냉장고보다 찬장이 먼저였다. 찬장에 먹을 것을 찾다가 부뚜막 위에 밥상 덮어 놓은 덮개를 열면 간장종지 고추장종지 된장 종지가 있었다. 연탄아궁이에 올려놓은 된장뚝배기 뚜껑을 재끼고 어른 수저로 푹푹 떠서 찬밥에 비벼 먹었다. 그리고 대문쪽 안벽에 닭장을 열어주면 닭들이 뒷문으로 나가면 산자락이 뚝으로 이어졌고 강 뚝밑으로 도랑주변에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집어먹었다. 요기조기 밭들이 있었고 뚝 넘어엔 큰 논들이 즐비했고 뚝 끝밑에는 한강 모래사장이 있었고, 한강 건너에는 상암동 쓰레기 메립지 산이 어둑하니 보였었다. 강변 뚝, 모래산에는 감자와 고구마맛이 나는 하얀뿌리 넝쿨이 자랐는데, 이걸 뽑아먹으면서 군것질을 대신했다. 산 정상에서 개를 잡는 어른도 있었고, 논일하는 일꾼들은 미꾸라지탕와 막걸리를 먹는 모습도 있었다. 아이들끼리 형들이 하던 걸 따라하다보면 산에 올라서 개를 잡아 먹게 된다. 발정난 돼지집에서는 죽는 날에도 그리 소리를 지르지만 늙어 죽는 돼지는 그리 발정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른도 이리 죽는 걸 호상이라해서 온동네가 배부르게 먹는 날이 되어 음식을 이웃끼리 나누어 먹었다. 비가 오거나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집을 향해 냅다 뛰었다. 고추를 말리면 멍석을 뒤집어 놓아야 하고, 빨래도 걷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열어놓은 항아리를 덮어야 하고, 닭들을 다시 닭장에 넣어둬야 한다. 이게 내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닭들이 다들어가 있었고 부엌 곤로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큰 냄비에 할머니는 배부른 하얀 닭을 집어넣고 있었다. 수돗가 바닥에 그것이 닭털이었던 것이다. 닭장에 닭을 세어보니 세마리가 없었다. 할머니 닭 세마리 없어! 여기 있잖아. 순간 눈물이 왈콱 쏟아졌다. 눈물이 소나기 소리에 들리지도 않는 것같았다. 바로 저녁이 되었고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 앉았지만 나는 밥을 안먹는다고 울구불구 했다. 울면 왜 그리 콧물이 나오지? 늘 훌쩍이면 코가 바로 코로 들어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아마도 콧물을 가장 많이 먹어 본 것같다. 콧물은 절로 넘어가도, 닭고기는 절대 넘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쥐새끼가 잠자는 닭똥꼬를 파먹곤 했다.나는 쥐새끼가 아니라 닭똥꼬를 파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닭잡으면 닭목아지와 닭똥집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식은 닭국물에 찹쌀밥보다 식은 밥이라도 말아먹다보면 그래도 맛나게 먹었던 것같은데, 이제는 바로 만든 뜻뜻한 닭죽도 못먹을 것같았다. 뜨거우면 먹기 힘들지만 뜻뜻한 국물은 시원하다. 아무리 뜨거워도 숟가락에 떠서 호호불면, 시원해 진다. 꿀꺽하고 아 시원해 하면 뜨거워 덴 혀도 금방 났고 또 뜨거운 걸 호호불면 아 시원하게 바로 낫는다. 이젠 지쳐서 콧물도 안나오고 울음소리도 못내겠다. 그사이 뜨거운 김냄새도 나지 않는다. 다 밥상에 물러나서 벽에 붙어 뒤집어지기 직전이다. 울고불고 누울 특권도 곧 빼앗기기 직전이다. 할머니가 닭뼈를 빠는 소리로 닭죽이라고 먹으라고 한다. 밥 안먹으면 밥상을 다시는 안차려놓는다고 한다. 마침 배에서 꼬로록 하니 안먹는다고 떼를 쓰지도 못하겠다 싶게 되었다. 그리 울고불고 했어도 모른 척하는데, 또 다른 길은 없었다. 여기 죽에는 닭이 없다고 하면서 죽이라고 먹으라고 하니 모른 척 닭죽을 먹으면서 다시는 고기는 안먹는다고 선언을 했다. 그러고 죽은 닭죽이 최고라 하는 것처럼 남은 닭죽을 싹다 남기지 않고 닭국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 버렸다. 절대 닭고기는 안먹겠다고 울고 불고 눈물 콧물까지 짰는데, 거의 다 식은 닭죽을 땀까지 내면서 열나게 닭죽을 다 먹어치운 것이다. 여지없이 배가 올챙이 배가 되고 말았다. 다시는 고기를 안먹는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죽!